여행은 낯선 곳에서 맞이하는 아침이다. 자신이 머물던 공간, 자신이 소속된 사회에서 벗어나 색다른 '낯설음'을 만나는 행위다.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곳의 정치·경제·역사·문화를 온몸으로 맞이하는 것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탐험가가 아니라도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 설렘이 여행의 매력이고, 관광 산업의 원동력이다.
경기와 인천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둘러싼 수도권이다. 선사 시대부터 현대까지 역사와 문화가 농축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국내·외 여행객들에게 매력적인 곳으로 꼽히지 못한다. 방문객 집계 통계만 봐도 금방 드러나는 현실이다.
코로나가 바꿔 놓은 업계 지형
'낯선 위기' 20세기로 돌아간 여행산업
출국 어려워져 국내로 '발길'
변화한 삶 맞춰 혁신 불가피
내국인들의 당일치기 여행은 잦지만, 외래 관광객(외국인)의 한국 여행에서 경기도와 인천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인천은 인천국제공항이 관문의 역할을 할 뿐이고, 경기도는 서울에서 숙박과 관광을 즐기는 외국인들이 잠시 들렀다 되돌아가는 미약한 '경유형 관광지'다.
바꿔 말하면, 여행객을 붙잡아 머물게 할 매력과 상품성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경기·인천 관광산업이 살기 위해서는 이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
코로나19는 삶을 바꿔 놓았다. 전 세계를 덮친 전염병은 출·입국과 이동을 막아버렸고, 관광산업에 균열을 가져오는 차원을 넘어 산업 자체를 멈춰 세웠다.
얼어붙어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지금은 무너진 관광산업을 되살릴 방법을 찾고, 위드 코로나와 포스트 코로나 시대 관광산업의 미래를 고민해야 할 시기다. 관광 업계 내부에서도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신기술과 새로운 문화 콘텐츠를 찾아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행과 관광은 분위기를 탄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지만, 침체기를 겪더라도 분위기를 잘 타면 금방 호황을 맞는다. 다른 산업 분야보다 회복 탄력성이 좋다는 의미다.
수도권 최대관광지인 소래포구가 코로나19의 시대를 그대로 반영한 듯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19 이전 우리 관광산업은 사스와 메르스, 사드 배치 갈등 등이 터질 때마다 어려움을 겪어 왔다. 하지만 고통의 터널을 빠져나오면 빠르게 상처를 회복했다. 모든 것이 '올 스톱'된 상황에서도, 업체들이 코로나19가 끝날 날을 기다리며 버티고 있는 이유다. 실제 경기도와 인천의 여행사와 여행 종사자는 줄지 않았다.
'BETWEEN'. 올해의 여행 키워드다. 코로나19로 인한 불안감과 회복 기대감의 사이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세부적으로는 균열(Break)과 위로(Encourage), 연결(Tie), 어디든(Wherever), 강화(Enhance), 기대(Expect), 주목(Note)의 영 단어 앞글자를 따서 구성했다.
아티스트 볼빨간사춘기는 코로나19 이전인 2018년 5월 '여행'이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노랫말은 공항으로 가서 휴대폰을 끄고 런던, 파리, 뉴욕, 새로운 곳을 찾아가자는 내용이 주다. 하늘길이 막힌 위드 코로나19 시대다. 공항을 통해 타지로 여행을 갈 수 없는 시대. 볼빨간의 노랫말이 무색하다.
새 콘텐츠·신기술 도입 요구
'경유형 관광지' 난제 풀어야
대한민국의 여행·관광은 20세기 가황(歌皇) 조용필이 1985년 4월 7집에 수록한 '여행을 떠나요'로 회귀했다. 공항으로 향해 여객기에 몸을 싣는 게 아니라 회색 빌딩을 떠나 인적이 드문 메아리 소리가 들리는 계곡과 깊은 산중으로 떠나는 여행으로 되돌려졌다.
관광 산업이 얼어붙은 시기, 코로나19로 변화한 삶에 맞춰 여행 역시 혁신을 피할 수 없게 됐다.
2022년 여행의 키워드는 무엇이 될까. 단절된 우리네 삶을 잇는 이음(Connect)과 치유(healing), 회복(Recovery)이 '코로나 극복'과 함께 경기·인천 관광에 스며들 수 있을까.
경인일보 기획콘텐츠팀은 통큰기사 경기·인천 관광의 미래를 통해 우리 지역에 대한 내·외국인들의 인식과 관광지의 과거와 현재, 관광 산업의 미래를 훑어봤다.
오래 머무는 제주·강원
스치듯 지나가는 경기·인천
2019년 외래관광객 방문 경기 14.9%·인천 8.0%
'서울 찾는 외국인 타깃' 셔틀버스 효과 미비
경기와 인천의 관광 자원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그 가치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자세히 봐야 보인다. 그만큼 '끌어당기는 힘'이 부족하다.
관광객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위기에 더 취약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경기·인천의 관광산업은 이번 코로나19 위기에서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로나19 전후 경기·인천 지역의 여행·관광을 숫자로 살펴봤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하는 국민여행조사보고서와 외래관광객조사보고서를 참고했다.
경기·인천의 공통된 고민이자 최우선 과제는 외래관광객(외국인) 유치다. 지난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5개년 치 외국인 관광객 방문현황을 보면 경기·인천은 서울에 비해 외국인들에게 매력적이지 못했다. 외국인 관광객의 선택을 받는 곳 역시 서울 쏠림 현상이 극심했다.
코로나19 전인 2019년 전국을 찾은 외래관광객 1천750만2천756명(추정치) 중 1천337만2천106명(76.4%)이 서울을 찾았고, 경기도와 인천은 각각 260만7천911명(14.9%), 140만220명(8.0%)에 불과했다.
서울을 찾은 외국인들이 경기·인천을 들르도록 하는 상품을 개발하고, 외국인 전용 셔틀버스인 '이지투어'를 운영했지만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이동에 제약이 생기자 외래관광객이 급감했다. 전체 외래관광객은 전년보다 84% 감소한 251만9천118명으로 줄었다. 서울은 118만9천24명(47.2%), 경기 64만7천413명(25.7%), 인천 29만9천775명(11.9%)으로 절망적인 수준이었다.
주요관광지점 평균입장객
외국인 관광객 방문현황
코로나19로 이동 제약… 절망적 수준으로 급감
내국인 여행 횟수는 줄지 않았지만 '당일' 그쳐
지난해 체류 관광 비율 강원 지역 65.5% 압도적
내국인의 여행 횟수는 코로나19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지만 경기·인천의 경우 고질적인 약점이 있다. 숙박 여행보다 당일 여행에 그친다는 점이다.
수도권에 인구가 밀집해 있어 주거지와 여행지의 이동 거리가 짧아 당일 여행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지만 관광객이 체류(숙박)하면서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경유하면서 미치는 영향에는 큰 차이가 있어 지자체 담당자들의 고심이 깊다.
항공기나 선박을 이용해 이동해야 하는 제주도는 특수하다고 하더라도 강원도는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는 뭍이다. 내국인의 경기·인천과 강원 지역 체류·경유 관광 비율을 비교해보면 강원 지역이 압도적이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숙박 여행이 줄어들면서 전반적인 체류 관광 비율이 떨어졌지만 강원 지역은 65.48%(2천236만2천회 중 1천464만3천회)로 월등했고, 경기·인천은 각각 19.97%(4천549만6천회 중 908만5천회), 21.58%(9천47만1천회 중 2천4만4천회)로 훨씬 낮은 비율에 머물렀다.
내국인 지역별 관광지 숙박비율 비교
지난해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에 그나마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았던 경기 지역의 주요 관광지는 용인 에버랜드(275만4천555명)와 파주 마장호수(178만4천161명), 양평 두물머리(174만8천814명), 과천 서울대공원(121만6천510명), 파주 임진각관광지(121만3천929명) 등이다.
인천의 경우 강화나들길(77만명), 남동구 소래철교(70만1천425명), 옹진군 북도면(38만9천474명), 강화전적지 5개소(17만3천647명), 마니산(16만1천371명) 등이 입장객 수가 많이 집계된 곳으로 꼽혔다.
산업 전반이 침체되면서 관광 업계의 매출액은 급감했지만 업체 수는 그리 줄지 않았다. 전체 관광사업체는 2019년 3만7천243곳에서 지난해 3만6천935곳으로 308곳이 폐업 신고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인천의 관광사업체는 오히려 각각 5천77곳에서 5천137곳, 1천238곳에서 1천265곳으로 늘었다.
"국외 여행상품 매출 0원 전세버스로 겨우 영업"
경영위기업종 포함됐지만 정부지원 손질 필요
사업체 수 집계로는 업체들이 '버티기'를 잘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 업체들의 상황은 폐업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경기남부권에서 상위권 영업이익을 올리던 G사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여행 상품을 전혀 판매하지 못하면서 매출이 거짓말 아니라 0원"이라며 "전세버스 사업으로 겨우겨우 영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지금처럼 국내·외 여행이 계속 묶이면 언제까지 버틸지 장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당장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여행사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방역 대책에 따라 영업을 하지 못하는 업종은 생계 지원이라도 되지만 어쩔 수 없이 영업을 하지 못하는 여행 업계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것이다.
최근 경영위기업종에 관광 관련 업종이 포함되면서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긴 하나, 업체들은 부족함을 호소한다.
관광진흥개발기금 대출 제도의 상환 기간을 현행 2년 거치 3년 원리금 상환에서 3년 거치 7년 분할상환으로 대폭 늘려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 관광 업력이 있는 업체가 고사하지 않도록 제도 손질이 절실하다는 제안도 나왔다.
장태영 경기관광협회 사무국장은 "경기도에서 전국 광역 지자체 최초로 업계 임대료 지원을 해주면서 지역 여행사들이 숨통을 틔웠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었다"며 "코로나19 종식을 기다리며 버티고 있는 지역 여행 업계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확실한 매력 부족한 경기·인천 관광지
볼래 말래, 갈래 말래… 느낌표 대신 물음표만 남는 명소
경기 396곳·인천 56곳 '관광지점' 보유
지자체들, 개발에 수백억 쏟아붓지만
많이 찾는 곳은 인플루언서 다녀간 장소
전국의 주요 관광지점은 지난해 기준 2천569곳이다. 이 중 경기·인천 소재 관광지점은 각각 396곳과 56곳. 유려한 자연환경과 선조들의 숨결이 여전히 살아있는 역사문화유적, 최첨단의 미래를 체험할 수 있는 곳들을 적지 않게 갖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내세울 만한 매력이 없다. 경기도는 서울만큼 대중교통이 편리하지 않고 워낙 광범위해 자가용을 이용하지 않는 이상 둘러보기가 쉽지 않다. 인천은 한국 최초의 개항장으로 근대 문물을 받아들이는 전초기지 역할을 한 곳이지만 다양한 여행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복합적인 위락 시설은 부재하다.
경기·인천의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관광지 개발에 많게는 수백억원을 쏟아 붓는다.
하지만 정작 찾는 이가 드물다. 여행객들의 발길이 닿는 곳은 연예인과 연관이 있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플루언서(influencer)가 다녀간 숨은 명소들이 주류를 차지한다. 결국 경기·인천에 관광지라고 내놓은 곳은 많은데 매력적인 곳은 별로 없다는 뜻이다.
광범위한 경기도, 둘러보기 쉽지 않고
인천, 여행욕구 충족 복합 위락시설 적어
경기도와 경기관광공사는 도내 31개 시·군을 고장이 지닌 특성과 관광자원에 따라 범주화했다. 경인일보 기획콘텐츠팀 취재진은 외래관광객은 물론이고 내국인에게도 독특한 경험을 선사하는 경기북부의 DMZ 관광지와 경기도의 대표적인 국민관광지 소요산 등을 지난 20~21일 이틀에 걸쳐 둘러봤다.
외국인들에게 경기도는 북한을 볼 수 있는 접경지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여전히 분단 상태에서 전쟁 준비를 하는 나라라는 인식 탓에 외래관광객들은 한국에 오면 '다크 투어리즘' 성격으로 DMZ 관광지를 찾는다고 한다.
대표적인 곳은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이다. 임진각은 임진강 너머 군사분계선 남쪽으로 약 7㎞ 떨어진 지점에 있다.
실향민을 위해 1972년 지어진 임진각은 본래 1층에 기념품점과 편의점 등이 있었지만 방문 당일엔 군용품과 건빵 등을 파는 기념품점 외 다른 점포들은 출입할 수 없도록 막혀 있었다. 3층에는 북녘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경기관광공사가 임진각 주변을 평화누리공원으로 공원화한 이유는 6·25 전쟁 중 격전지였다는 배경도 있지만 이외에도 폭파된 장단역 증기기관차와 평화의 종, 포로로 잡혀 있던 1만2천여명의 국군과 유엔군이 건너온 자유의다리, 제3땅굴 등이 인접해있기 때문이다.
관광객들도 DMZ 관광지 중 가장 많이 찾고 있는 만큼, DMZ 관광의 '베이스 캠프' 역할을 맡도록 투자를 한 셈이다.
취재진이 현장을 찾은 당일은 궂은 날씨 탓에 관광객은 거의 없었지만 호젓한 분위기를 즐기러 온 젊은 연인과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의 역사 공부를 위해 가족 단위로 찾은 관광객이 몇몇 보였다.
파주 시가지 근교의 오두산통일전망대 역시 DMZ 평화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장소다. 오두산은 고대부터 내려오는 군사적 요충지로 오늘날까지 오두산성터가 남아있다.
경기북부 연천군에는 대한민국 곳곳에 프랜차이즈 체인점을 낸 망향비빔국수 본점이 있다. 상호명에서 알 수 있듯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실향민이 북녘을 그리워하며 비빔국수 앞에 망향을 붙였다고 한다. 망향비빔국수 본점은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여느 프랜차이즈와는 다른 비빔국수 '원조'의 맛을 느끼기를 원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주한미군 화력여단을 둘러싼 소요산은 동두천시가 자랑하는 천혜의 자연 관광지다. 험준하지 않은 산세 덕분에 어린아이부터 노령층까지 관광객이 매우 다양한 곳인데, 코로나19 확진자가 2천명을 돌파하면서 다소 방문객이 주춤했다고 한다.
해골 바가지 물을 달콤하게 마셨다는 원효대사가 머무른 원효대와 원효굴, 자재암, 청량폭포 등이 주요 명소다.
파주, 연천, 동두천에 김포를 더하면 경기관광공사가 범주화한 평화역사관광권이다. 이외에도 기초지자체 지역을 전통문화예술관광권, 해양생태관광권, 생태휴양레포츠관광권, 현대도시문화관광권의 5개 벨트로 묶었다.
지난해 유네스코로부터 인증을 받은 한탄강 세계지질공원은 연천과 포천군, 강원 철원군까지 1천165.61㎢에 걸쳐 있다. 유네스코는 민간인 통제선·군사분계선과 가까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한탄강 일대를 높게 평가해 세계지질공원으로 승인했다.
한탄강 세계지질공원에서도 여행객들의 발길을 이끈 곳은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킹덤'에서 생사초를 발견하는 포천 영북면 비둘기낭폭포다. 배두나(극중 의녀 서비)가 약방 일기에 기록된 생사초를 발견하는 '언골'이 바로 천연기념물 제537호 비둘기낭폭포다.
경기도의 여행·관광 벨트
전통문화예술관광권
여주 이천 광주 오산
수원 용인 안성
해양생태관광권
평택 화성 안산 시흥
생태휴양레포츠관광권
남양주 양평 가평 포천
평화역사관광권
김포 파주 연천 동두천
현대도시문화관광권
광명 부천 안양 군포 의왕
과천 성남 하남 구리 고양
의정부 양주
"각지에 명소 있지만 이동거리 무시 못해"
관광공사 '경기도 둘레길' 육성 사업 추진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이렇게 찾아가 볼 곳들은 많은데, 워낙 산재해 있다 보니 전면에 내세울 관광 자원이 마땅치 않다는 게 경기도 관광정책·산업 전문가들의 고민이다.
박재영 경기관광공사 국내관광기획파트장은 "코로나19로 자연 친화적인 힐링 관광이 대세가 되면서 마케팅 초점도 생태·자연에 맞추고 있다"면서도 "각지에 명소가 있지만 이동 거리를 무시할 수 없다는 문제가 풀기 어려운 숙제"라고 말했다.
대신 박 파트장은 '경기도 둘레길'이 경기도 전체를 둘러볼 수 있게 하는 유인책이 될 것이라는 새로운 전략을 내놨다. 경기도 둘레길 사업은 시·군 둘레길을 연결해 도보 여행지로 육성하는 사업이다.
경기도 경계를 포함하는 15개 시·군의 약 863.8㎞를 평화누리길, 숲길, 물길, 갯길 등 4개 테마로 조성한다.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만큼, 당일 경유형 여행에서 숙박 체류형 관광으로 전환하는 효과를 낼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빛나는 아이디어가 '발길' 이끈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다. 부산하면 해운대가 떠오른다.
전라도는 식도락의 대명사다. 휴양의 성지로는 제주도가 있다.
그렇다면 경기도와 인천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 혹은 테마는 무엇일까.
머릿속에 여러 가지가 맴도는데, 단번에 대답하긴 어렵다.
경인 지역 관광산업이 직면한 현실이다.
전국 관광자원 15% 이상 있지만
한번에 떠오르는 '이미지' 없어
경기도와 인천의 관광 인프라가 부족한 탓일까.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관광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관광 장소 및 시설' 등을 포함한 전국 관광 자원 3천239개 가운데 451개(13.9%)는 경기도에 위치한다. 인천은 92개(2.8%)로, 경인 지역에만 15% 이상 몰려 있다. 적어도 '볼 게 없는' 지역은 아님을 의미한다.
오히려 경인 지역에는 옛것과 새것의 정취를 모두 경험할 수 있는 볼거리가 많은 편이다. 경기도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수원화성과 남한산성부터 DMZ(비무장지대)라는 대표적인 안보 관광지를 보유하고 있다. 개항장으로서 인천은 근대 문화유산뿐만 아니라, 168개 섬을 포함한 다양한 해양자원을 가졌다.
관광지로서 경인 지역의 일차적인 장점은 '다채롭다'는 데 있다. 요식업에 비유하면 양질의 다양한 음식을 대접하는 뷔페인 셈이다. 하지만 대표 메뉴가 없다는 한계도 동시에 노출한다. 경기도와 인천이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 콘텐츠를 만들고자 숙고하는 가장 큰 이유다.
인천발전연구원(현 인천연구원)은 지난 2017년 펴낸 '인천 관광 콘텐츠, 가치를 창출하다'의 서문에서 "풍부한 자산·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인천의 잠재성과 가치를 어떻게 관광객들에게 전달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인천관광을 흥미롭고, 즐거운 경험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인천 관광의 현주소를 평가한 바 있다.
경기도가 가진 고민 역시 비슷하다.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면적이 넓은 경기도의 관광지는 31개 시·군에 흩어진 형태다. 곳곳에 산재한 관광 자원을 씨줄과 날줄을 엮듯 하나의 관광 상품으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한 상황이다.
인천 송도국제도시 센트럴파크를 찾은 관광객들이 보트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송도 센트럴파크는 불과 30여 년 전에는 바다 한복판이었지만 매립을 시작하고 고층빌딩 숲이 조성되며 주민들이 잠시 쉴 수 있는 대형 녹지를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조성된 공원으로 현재는 수도권의 대표적 데이트 코스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대표상품 만드는 것 당면 과제
'산업+관광' 등 변화의 바람도
"참 좋은 곳이 많은데,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 업계 관계자들이 전한 경기도 관광 산업의 오늘이다. 경기관광공사 관계자는 "31개 시·군에 다양한 관광 브랜드가 있다는 게 경기도의 장점이자 단점"이라며 "'다채로운 경기도'도 좋지만, 명확하게 특징을 살린 관광 슬로건을 내세울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와 인천의 관광 산업이 당면한 과제는 각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 상품을 만드는 것이다. 핵심은 활용법이다. 경기도와 인천이 보유한 수많은 관광 자원을 '어떻게' 매력적인 상품으로 만들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이들 지역은 일종의 '킬러 콘텐츠'를 만들고자 이미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지역 산업과 관광을 결합한 '산업 관광'을 기획하거나, 정체된 관광 산업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을 스타트업 발굴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이 같은 아이디어가 경기도와 인천 관광의 새로운 미래를 열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을 들여다본다.
경기도의 새 전략 '산업 관광'
누가 봐도 잘 나가는 기업들
뼈대 삼아 지역 살린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네이버 등 사업체 도내 밀집
탄탄한 산업 기반은 국가의 경쟁력이 된다. 지역으로 눈을 돌려도 마찬가지다. 업종을 불문하고, 지역에 뿌리내린 건실한 기업 하나가 곧 지역의 경쟁력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네이버 등 굴지의 대기업부터 내실 있는 중소 규모 기업까지 국내 사업체의 22.3%(2019년 기준)가 밀집한 경기도의 산업 인프라가 주목받는 이유다.
경기도는 이처럼 풍부한 산업 자원을 '관광'에 접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전 각광 받던 한국의 '의료 관광', '뷰티 관광' 등과 비슷한 맥락이다.
경기도의 일차적인 목표는 특정 산업에 관심을 가진 국내외 관광객을 유치해 관련 산업체를 탐방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주변 관광지와 맛집, 숙박 업체 등과 연계 프로그램을 만들어 단순 탐방에만 그치지 않고,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지도록 만드는 게 최종 목표다.
커피문화 체험 '국내 최초 상품화'
산업관광 현장-씨즈커피코리아
"눈코 뜰새 없이 바빠도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2년 전이 그리워요. 다시 활기를 찾아야죠."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주)씨즈커피코리아 본사. 이곳에는 커피공장 견학과 핸드로스팅 등 커피와 관련된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커피문화체험관'이 있다. 커피문화 체험을 관광상품화 한 것은 씨즈커피가 국내 최초다.
국내 편의점 즉석커피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주)씨즈커피가 운영하는 커피체험관은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에 개장했다. 개장 직후부터 중국인 등 국내외 관광객들이 몰려오기 시작하면서, 많을 때는 하루 700~900명까지 체험객들이 다녀갔다.
이미 로스팅 된 커피를 그라인더로 갈아 핸드드립 방식으로 내린 뒤 시음하는 외국 주요 커피농장 등 관광지와 달리 이곳 체험관에서는 철망으로 된 개인용 로스팅기로 직접 커피를 구운 뒤 내려 마실 수 있도록 하면서 이용객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인기에 힘입어 경기관광공사의 홍보 지원까지 받아 외국인 관광객들은 꾸준히 증가했다.
"많은 관광객들이 체험을 하면서 시끌벅적하던 때가 언제인지도 모르겠다"며 "회사 매출도 뚝 떨어진 만큼 직원들 사기도 많이 떨어져 아쉽지만 곧 많은 이용객들이 몰려와 활기를 찾을 것으로 기대해요"
"커피 익는 소리와 즐거운 대화… 한국식 커피 문화 느끼게 할 것"
(주)씨즈커피코리아 박정훈 대표이사
인천에 상륙한 IT 다이소
코로나19는 현실세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생활양식 대부분은 이미 비대면 방식으로 변화했다. 이제 가상세계는 현실세계의 답답함을 해소하는 대안적인 공간을 넘어 현실세계의 인간 활동을 대체하는 공간으로 새삼 주목받고 있다.
아직 불완전한 수준임에도, 3차원 가상세계를 일컫는 메타버스가 미래를 선도할 신산업으로서 큰 이목을 끌고 있는 이유다.
관광 산업은 코로나19로 크게 휘청였다. 집 밖을 나서는 것부터가 여행의 시작인데, 발이 묶인 사람들이 집 안에 갇혀 있는 시간이 늘어난 탓이다. 관광 산업도 현실세계의 대체재로서의 비대면 관광이 아닌, 새로운 IT 기술을 활용한 관광 상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프랑스어로 '초대하다'는 의미를 가진 인천 관광 스타트업 기업 '앙비떼' 역시 마찬가지다.
앙비떼의 윤태원 대표는 인천을 한국의 가장 큰 '입구'라고 표현했다.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들이 처음으로 마주하는 도시가 인천이라는 것이다. 그는 인천에 방문한 관광객들이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심어주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봤다.
'앙비떼' VR·3D 온라인 전시, 마이스 접목
"메타버스로 도시 매력 보여줄 것"
"메타버스 세계에서는 도시의 매력을 금방 보여줄 수 있거든요. 가상세계에서 간접 체험을 하고, 자연스럽게 직접 체험으로 연결될 수 있게 만드는 건 IT 관광 기업들이 다 같이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에요."
윤 대표는 다음 달 인천 '청년의 날'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청년의 날을 맞아 인천의 MZ세대 청년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수 있도록 3차원 가상공간을 만드는 게 앙비떼가 맡은 역할이다.
"누군가는 저희에게 IT 다이소라고 그래요. 자본이 많은 기업들과 비교하면 틀린 말은 아닐 거예요. 그래도 지역 관광 활성화 등을 위해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전부 하려고 합니다."
인천맥주, 인천시민의 자부심
인천맥주의 박지훈 대표가 맥주라는 아이템으로 사업을 시작한 건 6년 전 일이다. 그의 학창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신포동에 펍을 열면서부터다. 해를 거듭하면서 펍은 조금씩 발전했다.
펍을 운영한지 2년이 지난 시점부터 직접 맥주를 만들기 시작했고, 지금은 맥주를 생산하는 공장 설비를 갖춰 인천 지역 200여개 업체에 맥주를 납품하고 있다.
"인천에서 시작해 인천과 관련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어요. 지역 맥주, 지역 양조장으로서 지역에서 비즈니스를 하며 자리를 잡고 싶었고, 올해 관광 스타트업 기업으로 선정되면서 이름도 인천맥주로 바꾸게 됐어요."
인천맥주의 주력 상품은 '개항로'라는 이름의 맥주다. 맥주 이름은 개항지인 신포동의 역사를 담았다. 병 모양과 개항로를 쓴 서체는 구도심의 정취를 살려 클래식한 감성이 담겼다.
맥주를 홍보하는 포스터 하나에도 지역의 색깔을 반영했다. 광고 모델은 유명 연예인 대신 지역 주민이었다. 인천맥주가 해석한 지역의 정체성을 온전히 담기 위해서였다.
'인천맥주' 개항지 신포동 역사 담아…
"이걸 먹으러 오게끔 하는 것도 역할"
"인천하면 거친 느낌이 있는데, 그런 거를 숨기기보다 내놓고 보여주면 더 세련되게 보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인천을 보여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가장 많이 했죠."
인천맥주의 목표는 지역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이다. 무리해서 외연을 확장하기보다 인천 전역에 유통망을 구축하며 내실을 다지는 게 최우선 과제인 셈이다.
그래서 인천 이외 지역에서 쏟아지는 납품 제의도 정중하게 거절하고 있다. 인천맥주를 맛보기 위해서라도 인천을 찾게 만드는 것. 이 또한 인천맥주가 지역맥주로서 정체성을 다져가는 한 방식이다.